F/26 위암 투병일기 #4 :: 위암 수술 후 일주일(회복, 식사)

2020. 2. 23. 22:23투병일기.

# 위암 수술 후 일주일

밤 9시 반에 수술실에서 나왔는데, 다음 날 새벽 5시에 엑스레이 찍으러 가야 하는 건 모든 환자 공통이었다. 진짜 제일 힘들었던 순간인 것 같다. 폐결절 수술하고 무리하게 걸어서 엑스레이 찍으러(한 시간에 걸쳐서..ㅎㅎ) 다녀온 게 불과 일주일 전이었기 때문에, 이번엔 휠체어를 타고 갔다. 물론 걸을 수 있는 몸도 아니었다. 근데 휠체어를 타기까지, 내 몸 하나 일으키는 게 이렇게 끔찍하게 힘든 일일 줄은 몰랐다. 무통주사를 얼마나 더 눌렀는지 다녀왔을 때는 어지럽고 구토감이 있었다. 

> 무통주사

병상에 오래 있으면서 다양한 나잇대의 환자들을 보게 되는데, 어르신들 중 아직도 가격대비 아깝다며 무통주사 신청 안 하시는 분들을 종종 본다. 폐결절 수술할 때만 해도 폐 수술 중 '간단한' 수술이라는 말에 무통주사가 필요 없을 것 같았는데, 전혀! 절대! 꼭! 필요하다. 일단 나와서는 추가로 달 수 없기 때문에 무조건 미리 신청해야 한다. 물론 수술 후에는 너무 아프니까 이 주사가 전혀 효과가 없는 것 같고, 자동으로 떨어지는 주사가 대체 들어가고 있긴 한 건지 답답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 이름은 무통주사지만 절대 무통이라고는 할 수 없고, 아프긴 너무너무 아프지만 이거라도 없었으면 더 아팠을 거라고 생각한다. 

전신 항암을 6차례 한 뒤 한 수술은 몸이 너무 안좋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통주사 부작용이 심하게 났다. 결국 주사를 떼고 따로 주사로 진통제를 맞았다. 어쨌든 이건 차후의 일이고 신청할 수 있는 건 신청해서 다 했으면 좋겠다. 1 정도라도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그 방법을 쓰는 게 좋은 것 같다.

어쨌든 소변줄 빼고, 정신을 좀 차릴 정도가 되면 운동을 해야 한다. 배에 가스를 채워서 수술했기 때문에 내가 움직여 줘야 이런 게 빠져나간다. 운동이라 함은 걷는 거다.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게 걷는 것 밖에 없다ㅜㅜ. 수술 전 외과 병동에 왔을 때 봤던 복도 걷기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 배에 계속 더부룩하고 불편감이 있는데, 걷는 것 외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때부터 주치의 선생님한테 계속 혼났다ㅎㅎ. 더 운동하세요. 더 걸으세요ㅜㅜㅜ.

나이 있는 환자분들은 해당 없었던 것 같은데, 재활실에서 선생님이 오셔서 처음 걷는 건 좀 도와주셨다. 후에 이틀 정도는 재활치료실 가서 사이클 같이 생긴 기구도 타고, 도움 받아서 스트레칭도 조금씩 했다. 그렇지만 한 시간 운동하고 나면 다섯 시간은 누워있어야 하는 몸 상태입니다...  

중간에 배가 너무 아프고, 가스가 차는 것 같아 힘들었는데 이걸 해결할 방법도 걷는 것 뿐이었다.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열심히 걸어야 한다. 설상가상 수술 전에 했던 월경도 수술 직후에 다시 시작해서 몸이 더 최악이었다(혼자 혈뇨인 줄 알았다). 수술이 그만큼 몸에 힘든 일인가 보다ㅜㅜ. 복강경이 아무리 개복에 비해서 간단하고 회복이 빠르다고 해도 아프고, 환자가 회복하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때부터 내 생명을 유지시켜주고 있는 영양제. 스모프카비벤페리페랄주.

#위암 수술 후 식사

아무래도 위암이 힘든 건, 역시 잘 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단 먹으면 힘들기 때문에 회복도 힘든 것 같다. 먹는 게 가장 기본적인 일이고, 내가 모르는 습관도 많았는데 한 순간에 모든 걸 고치고 받아들이는 게 참 힘들다. 이쯤 재활실 선생님과 자주 하던 대화는 '선생님 닭발에 오돌뼈가 너무 먹고 싶어요. 꿈도 못 꾸겠죠?'였다. 아직도 너무... 먹고 싶다...

수술 후에 금식이 끝나면 미음, 죽부터 밥까지 조금씩 먹을 수 있는 게 나온다. 하루에 조금씩 나눠서 6식을 하거나 더 심하게는 9식으로 나눠 먹어야 하기 때문에 병원식도 맞춰서 간식이 나온다. 난 밥 먹는 게 너무 힘들어서(원래 좋아하지 않아서ㅜㅜ) 주로 간식만 먹었다. 죽도 밥도 이제는 병원식은 일절 먹고 싶지 않은 상태... 간식으로 으깬 감자와 계란찜이 나왔는데 으깬 감자만 먹었다. 

그럼에도 살 수 있는 건 사진의 하얀 영양제 덕분이다. 수술 후부터 항암을 하고 있는 지금까지 잘 먹지 못하는데 연명 중인 건 영양제만 맞아도 살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저 영양제는 입자가 커서 혈관주사로 맞으면 금방 뻐근해지고 아픈데, 포트로 맞고 나서부터는 아무 느낌이 없다. 그리고 왠지 영양제를 맞으면 입맛이 뚝 떨어진다. 어쨌든 아무것도 안 먹고 영양제만 맞아도 화장실을 가는 인체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다.

뉴케어는 좀 나아지고 나서부터 보조제로 시도를 해봤는데, 이게 은근히 걸쭉하고 된 느낌이다. 결코 가볍지가 않아서 먹으면 괜히 울렁거리고 더부룩했다. 그래서 식사를 잘 못해도 식사 대용으로 쓰기는 힘들었다ㅜㅜ 여러 맛이 있어서 다 시도해 봤지만, 결국 화해하지 못했다.

퇴원 후에 대체 뭘 먹어야 하는지가 위암 환자라면 제일 예민한 부분일 것 같다. 엄마도 나도 열심히 병원식 나올 때마다 사진으로 찍어 놓고, 책도 사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했지만 먹어도 되는 음식과 안 되는 음식들에 대해서 다 하는 말이 조금씩 달라서 엄청 헷갈렸다. 양배추 같이 위에 좋다는 음식도 수술 직후에는 섬유질이 많기 때문에 피하라고 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밥도 흰쌀밥이 좋다는 건지, 안 된다는 건지 예민하게 하나씩 챙기기엔 정보가 너무 많고 내용이 다 달랐다.

결론적으론 먹히는 걸 먹었다. 사실 퇴원하고 나서 뭘 먹어도 아팠다. 가만히 있어도 아프고, 누워 있어도 아프고, 먹으면 더 아프고, 아무리 천천히 조금씩 먹어도 아팠다. 빼놓지 않았던 건 '고기'다. 위암 환자들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루머(?)가 많은데, 이건 절대 아니라는 점. 오히려 잘 먹지 못하기 때문에 꼭 챙겨 먹어야 한다. 

진 밥에 소고기를 제일 많이 먹었다. 어차피 먹을 수 있는 양은 많아봐야 소고기 5~6점이다. 밥이 먹히지 않을 때는 샤부샤부로 먹는 것도 야채와 고기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오리 고기 먹을 때는 역대급 식사를 했던 것 같다. 고기가 질릴 때는 생선을 식단에 꼭 넣었다. 국이나 찌개는 많이 먹는 게 좋지 않아서, 된장찌개나 미역국을 조금씩 먹었다. 

26년 동안 아침을 안 먹고살았는데, 처음으로 꼬박꼬박 챙겨 먹게 됐다. 먹어야만 한다는 게 괴로운데, 주로 연두부를 먹었다. 간식으로는 주로 감자를 먹었다. 하루 6식을 챙겨 먹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고, 먹히는 걸 조금씩 먹는다고 생각하는 게 편할 것 같다. 커피도 아주 연하게 하루 1잔 마셨다. 

건강식을 잘 챙겨 먹으면 물론 좋겠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강박적으로 챙겨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위암은 어쨌든 절제 후에 먹는 게 힘들고, 이전 같지 않고 먹기만 하면 아픈데 먹는 일로 더 우울해지는 게 위험한 것 같다. 몇 번 심한 덤핑을 경험하면 먹는 게 싫고 무서워지는데ㅜㅜ 그래도 먹는 게 중요하다.

덤핑 증후군 관련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 이어서.

이전 글은 아래에서:) 

2020/02/14 - [투병일기] - F/26 위암 투병일기 #3 :: 위암 수술(복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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