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26 위암 투병일기 #9 :: 2차 항암, 탈모 시작

2020. 3. 3. 23:13투병일기.

집에서 딱 일주일을 쉬고 다시 입원했다. 다행히 1회 차 항암 후에 응급실 가고, 떨어진 면역력 올리고 퇴원한 후에는 컨디션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숨 막히고 전혀 못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은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서 생기는 증상인 것 같다. 

물론 혈구 수치가 올라와도 부작용은 있었다. 집에서 쉬는 일주일 동안에는 불특정하게 나는 오심이 제일 힘들었다. 뭐라도 먹으면 울렁거리고 어지러웠다. 이럴 땐 무조건 누워서 쉴 수밖에 없었다. 한, 두 시간 정도 누워서 쉬고 괜찮아지면 소소한 일상생활은 할 만한 수준이었다. 재입원 날이 가까워질수록 컨디션은 올라갔다. 살아날 것 같으면 다시 항암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쉬는 동안 열심히 고기를 먹은 덕분인지(?) 피검사 수치가 괜찮았고, 밀리지 않고 항암할 수 있었다. 항암을 하는 사람들한테 가장 무서운 상황은 몸이 안 따라줘서 주사 일정이 밀리는 거다. 매번 항암 뒤에 혈구 수치가 떨어지면서도 한 번도 밀리지 않고 치료받을 수 있었던 건 정말 다행인 것 같다.

#2차 항암

2차 항암은 3월 10일에 입원해서 17일 밤까지 항암하고 그 뒤로는 면역력 떨어져서 21일에 퇴원했다. 항암 직후 떨어진 혈구 수치 올리는데 4일이 걸린 셈이다.

투약한 약과 방식은 1차와 동일하다. 

2020/02/27 - [투병일기] - F/26 위암 투병일기 #7 :: 1차 항암(5-FU, 팍셀주), 부작용

 

F/26 위암 투병일기 #7 :: 1차 항암(5-FU, 팍셀주), 부작용

위 절제 수술 후에 항암까지 4주 정도 텀을 뒀다. 처음엔 집에서 꼼짝도 못 할 것 같았는데, 그 사이 조금씩 밖에서 걷고 카페나 외식(정말 신중히. 먹고 탈 나면 바로 화장실행에 몸져누워야 해서.)을 할 정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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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항암은 주사를 맞는 동안 내내 힘들었다. 처음 항암을 시작하기 전에 전체 회차 중에 한두 번은 고비가 올 거라고 했는데, 난 전신 항암을 하는 6회 차 내내 고비였다. 주사를 맞는 동안만 생각하면 1차가 제일 괜찮았던 것 같다. 주사가 누적되면 누적될수록 점점 힘들었다. 

2차 주사를 맞는 동안에는 정말 한끼도 먹을 수 없었다.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토를 했고, 식욕도 전혀 없었다. 오심만으로도 힘든데, 가슴이 조이고 답답한 느낌이 정말 힘들었다.

2차가 힘들었던 건 투약 내내 있는 오심과 흉부가 조여 오는 답답한 느낌을 잡을 수 있는 약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약들은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이 났다. 오심을 잡는 약의 부작용도 오심이 날 수 있는 거라니 아니러니 하다. 

투약금지 팔찌


맥쿨주처럼 많이 쓰는 약에도 부작용이 나서 몸이 뒤틀리거나 발작이 나기도 했다. 결국 투약금지 팔찌를 하고, 계속 다른 약을 쓰면서 맞는 약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비급여 약까지 전부 다 써봤고, 그나마 효과가 있었던 나제아를 맞았다. 

부작용이 계속 나면서 느낀 건 환자와 보호자가 투약되는 약들을 알고, 기록하고 반응이 어땠는지 세세하게 관찰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다. 많은 환자는 관리하는 치료진이 하나하나 세세하게 신경쓸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기록하고 기억하고 요구하는 게 중요했다. 어떤 약에 어떤 반응과 효과가 있었는지 꼭꼭 확인하고 기록하는 게 도움이 된다. 엄마는 이때부터 약을 세세하게 기록했고, 나도 약마다 어떤 느낌이 드는지 세세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투약금지 팔찌를 차고 있어도 같은 약이 투약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사 맞을 때마다 꼭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또 백혈구 수치 저하

제일 힘든 날은 24시간 짜리 다섯 번째 전신 항암약이 끝나는 일요일 밤이었다. 백혈구가 죽어 나갈 때 몸이 제일 힘든가 보다. 2차부터 그 뒤로는 늘 일요일 밤이 가장 무서웠다. 주사가 끝난 뒤 바로 혈구 수치가 감소해서, 월요일 아침에 한 피검사 결과 혈구 수치가 1000이 되지 않아 퇴원할 수 없었다. 가장 힘든 일요일 밤을 보내고 나면 월요일에는 300 정도의 수치가 나왔다. 

계속 발작이 나고, 몸이 뒤틀리고 부작용 방지 약들에도 부작용이 나서 결국 아티반을 맞았다. 처음 맞는 마약류 약이었다. 마약류 약들이 정말 무섭다고 느낀 건, 약을 맞는 순간 답답했던 흉부가 쩍쩍 갈라지면서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몸이 편해지는 기분을 잊을 수 없지만, 그만큼 이 약이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정말 죽을 것 처럼 아픈 게 아니라면 최대한 맞지 않아야 할 약이지만, 6차까지 갈수록 점점 더 자주 쓰게 됐다.

조혈제는 하루에 한 대, 수치가 더 떨어질 때는 두 대를 맞는 날도 있었다. 조혈제를 맞는다고 수치가 바로 오르는 것도 아니고 몸이 피를 열심히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치가 올라오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이 기간이 제일 힘들고 지루한 것 같다. 주사를 계속 맞다 보면 어느날 갑자기 몸이 일을 열심히 해서 수치가 확 오른다(물론 확 오른 만큼 확 내려갈 수도 있다). 전날까지 700 정도였던 수치가 퇴원하는 날에는 9000이 됐다.

매일 새벽에 한 피검사 결과를 회진 때 알려주셨는데, 이때까지 정말 너무 간절하게 수치가 오르길 기대하고 기다리고 했다. 수치가 1000이 안 되면 얼마나 실망스러운지 모른다.


#탈모 시작

1차 항암이 끝나고 나서 머리가 조금씩 꽤 빠졌는데, 그래도 머리를 가리고 다닐 만큼은 아니었다. 2차 항암을 하던 중에 갑자기 도저히 어찌 할 수 없을 만큼 머리가 막 빠지기 시작했다. 처음 항암 시작하고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시점이었던 것 같다. 알고는 있었지만 병원 침대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머리가 계속 빠져서 샴푸를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움쿰 빠지고 나면 또 머리를 혼자 말릴 수 없을 정도로 빠졌다. 머리가 빠질 때 다른 분들처럼 두피가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속절없이 빠지는 머리에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오히려 모두 밀고 나서는 후련하고 만족(?) 스러웠는데 말이다. 

결국 퇴원하고 머리는 셀프로 삭발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