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26 위암 투병일기 #15 :: 4차 항암, 음료수 뚜껑을 혼자 열 수 없다.

2020. 3. 12. 23:02투병일기.

#일주일 휴지기

12일 퇴원 후 집에서 딱 일주일 휴지기를 가지고 4월 21일 다시 입원했다. 몸을 제대로 만들 시간도 없이 빠르게 돌아오는 항암 주기가 버겁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빨리 끝내버리고 싶기도 하고 양가감정이 들쑥날쑥했다.

몸에 좋다는 다른 것들은 다 제쳐두고, 일 등급 한우만 열심히 먹으라는 선생님 말에 진짜 열심히 고기로 보충하면서 휴지기를 보냈다. 이쯤 몸무게가 40kg 초반까지 떨어져서 휴지기에 어떻게든 1kg라도 찌워 가려고 노력했지만 먹는 양의 한계가 있어서 그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몸에 힘이 다 빠지면서 혼자 이온음료 페트병 뚜껑을 열 수 없을 때 왈칵 눈물이 막 났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지고, 내 몸을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하니까 사소한 일에도 박탈감이 느껴지고 우울해졌다. 입맛도 거의 입덧을 하는 수준이라 뜬금없는 과일들이 먹고 싶기도 하고, 생각으로는 너무너무 먹고 싶었는데 막상 한 입 먹어보면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맛 들인데, 입에서는 알던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게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먹는 일이 즐겁지 않고, 무섭고 걱정된다는 게 위암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것 같다. 살려면 먹어야 하는데 먹으면 바로 아프니까.

 

 


#4차 항암

어쨌든 전쟁같은 휴지기를 버티고 4차 항암 하러 입원했다. 입원 기간은 4월 21일 ~ 5월 4일이었다. 입원 기간이 점점 늘어났다ㅎㅎ. 떨어진 면역력이 올라오는 시간이 점점 오래 걸린다는 의미다.

입원했을 때 피수치가 좀 낮아서 조혈제를 맞고 시작했다. 이때부터 6차까지는 쭉 입원하자마자 주사를 맞았다. 이때 맞는 주사도 근육에 놓는 주사고, 3대를 한 번에 맞아야 하는데 정말..... 남다르게 아팠다. 항암 직후에 맞는 조혈제는 몸이 너무 아파서 주사가 아픈 줄도 모르는 느낌인데, 나름 좋은(?) 컨디션에 맞는 조혈제는 특히 아팠던 것 같다. 복부 항암을 먼저 진행하고, 복부 항암은 컨디션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아서 다행히 주사도 맞으면서 컨디션도 올리는 하루 반을 보냈다.

전신 항암을 하는 중에도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보낸 것 같다. 다른 때 꼭 한 번씩 기절을 하곤 했는데 생각보다 평탄하게 지나갔다. 그래도 아프지 않고 지나간 건 아니어서, 열심히 약에 의존하면서 버틴 것 같다. 문제는 이번 항암이 끝나고 CT를 찍어야 했는데, 항암 끝나자마자 피 수치가 쭉쭉 떨어져서 제때 찍을 수 없었다는 거다.

4차 항암도 일요일 밤이 가장 힘들었다. 결국 진정제 맞고 가라 앉았던 것 같다. 그리고 월요일 피 수치는 670. 퇴원 기준인 1000에 못 미친다. 이때부터 구토-발작-구토-오심이 심하게 났다. 하루에 맞는 주사만 몇 대인지.

또 항암을 하는 중에는 당 수치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항암약에 포도당이 섞여 있기도 하고, 항암 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는데 수시로 손 끝을 찔러서 남아나는 손이 없었다. 살면서 당 관련된 문제를 생각도 해보지 못했는데, 처음에는 설명 없이 검사하고 수치가 높게 나와서 너무 당황했었다. 

조혈제를 맞아도 절대 수치가 바로 오르지 않는다. 주사를 아무리 맞아도 몸이 떨어질 만큼 떨어지고 바닥을 쳐야 수치가 올라오는 것 같다. 670 - 450 - 150으로 쭉쭉 떨어졌다. 수치가 더 떨어질 때는 몸도 그만큼 좋지 않아서 다음 날 기대도 되지 않았다.

매일 엄마가 '오늘 수치는 얼마일 것 같아?' 물으면 대충 '더 떨어져서 100~200 사이?'라고 하면 얼추 맞았다. 점점 백혈구 죽는 걸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다. 초반엔 새벽에 피검사할 때 엄청 기대를 했는데, 이제는 목요일쯤까지는 기대도 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주치의 쌤도 해 줄 말이 없고... '오늘도 힘들겠네요'가 끝이었다. 주사 맞고, 수치가 올라올 때까지 할 수 있는 게 없다.  

면역 수치가 막 떨어져서 늘 격리실에서 입원 끝자락을 보냈다. 보호자도, 나도 계속 마스크를 하고 있어야 하고 주치의 쌤도 웬만해선 가까이 오지 않는다. 

몸이 안 좋을 때 구토만 나는 게 문제가 아니고, 손발이 붓고 무릎도 시큰시큰 아팠다. 신경계 쪽 약을 먹어도 쉽게 잡히지 않았다. 나는 손이 제일 심했는데, 덜덜 떨리고 저릿저릿 아프고 뭘 쥘 수 없었다. 진짜... 페트병을 혼자 못 열 때 설움이 폭발했다. 이때부터 신경계 약 용량이 점점점점 늘었고, 나중에는 800g씩 먹어야 했다. 무릎은 오랜 비행을 할 때 시큰시큰 벌어지는 것 같은, 딱 그런 느낌이다. 약을 맞지 않으면 몸 여기저기가 아파서 자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수요일에 바닥 찍은 피 수치가 목요일에는 좀 올랐고, 금요일에는 좀 더 올라서 CT를 찍을 수 있었다. 근데 또 문제는 그동안 조영제에 부작용 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엔 몸 컨디션이 안 좋아서인지 CT 찍은 뒤 계속 구토를 했다. 결국 또 그 날 퇴원을 못하고ㅜㅜㅜ 하루 더 있다가 탈출 성공!

그리고 곧 최악의 5차가 오는데....ㅜㅜ